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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성인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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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장협 사무국 작성일22-04-22 07:57 조회5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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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신문 2022.04.24발행)

베르나르도 톨로메이 성인을 아십니까? 

화려한 시에나, 황무지 아꼬나(상) 


순례자의 기도문 중에는 “성서 안에서, 전례 안에서, 가르침 안에서 만났던 예수님을 이제 성지에서 새롭게 뵙고자 하오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순례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만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순례길 위에서 만나는 성인들의 삶도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지중해의 서쪽 끝인 포르투갈에서 출발해서 아시아의 동쪽 끝인 일본까지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전교의 주보 성인으로 추앙받으시지요. 

하지만 그분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활동적인 선교사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고 진지한 수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하비에르 성인과 함께 인도네시아 암보니아 진주 해변에서 활동했던 예수회원 만실랴스의 증언입니다. 

“그분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극심한 고통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와 침묵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이 낮 동안에 발휘하는 모든 힘이 사실 그 전날 밤을 지새우며 보낸 기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오직 그분과 함께 살아 본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 이렇듯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성인들도, 실제로 겉으로 알려진 모습과는 매우 다른 삶을 살았던 경우가 많습니다. 

성 베르나르도 톨로메이(Bernard Tolomei, 1272~1348)도 그중 하나입니다.

톨로메이 성인을 소개하려면 잠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위치한 토스카나는 아름다운 자연, 맛있는 와인, 역사적인 예술작품이 있는 르네상스의 발원지로서 수많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입니다. 

피렌체를 비롯해 피사, 루카, 베르실리아, 마렘마, 키안티, 카스틸리오네 델라 페스카이아, 발도르차, 100개의 탑이 있다는 산지니냐노와 베네딕토 성인의 고향인 아레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이 모두 토스카나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르네상스 이전까지 토스카나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피렌체가 아니라 시에나였습니다. 

영국의 켄터베리에서 프랑스, 알프스, 바티칸까지 이어지는 중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성지순례 길인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에나는 로마와 유럽 전역을 잇는 상업과 순례의 요충지로 성장했고, 최초의 현대적인 금융업이 시작된 것도 이곳입니다. 

당시 환전상들은 ‘돌의자’ 혹은 ‘책상’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반코(banco)’에 앉아 활동했는데, 이후 이것이 은행을 뜻하는 영단어 ‘뱅크(bank)’가 되었을 정도이지요. 1472년 창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반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anca Monte dei Paschi di Siena, BMPS)’도 시에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3세기에 봉헌된 주교좌 성당, 도미니코 대성당, 가타리나 생가성당,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프란치스코 성당 등등 유명한 성지와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을 비롯한 많은 관광지가 있으며, 성녀 가타리나, 성 베르나르디노, 성 톨로메이 등 유명한 성인 성녀를 많이 배출해서 ‘성인들의 도시’라고도 불립니다. 


시에나를 순례할 때마다 제가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아꼬나 골짜기입니다. 

시에나 최고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법학 교수이며 황제의 기사로 화려하게 살아가던 요한이라는 사람이 41세가 되던 해에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침묵과 기도의 삶을 시작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본래 요한의 가족이 소유한 도시 외곽에 있는 쓸모없는 골짜기였습니다. 

십자가와 몇 권의 책, 최소한의 살림 도구만을 들고 아꼬나에 자리 잡은 세 사람은 동굴을 파서 거처를 만들고, 이불 대신 지푸라기를 덮었으며 나무 둥지를 베게 삼았습니다. 

이 동굴은 아직까지도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요한은 시토회를 부흥시킨 베르나르도 성인을 존경하여 성인의 이름을 자신의 수도명으로 삼았습니다. 

이 분이 바로 성 베르나르도 톨로메이입니다. 나즈막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아꼬나 골짜기 안에는 이제 단아한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9년에 700주년을 맞은 ‘베네딕도회 몬떼 올리베또의 성 마리아 연합회(Congregatio Benedictina S. Mariae Montis Oliveti)의 모원인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Abbazia di Monte Oliveto Maggiore)입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대한민국, 이스라엘, 브라질, 미국, 과테말라 등지에서 25개의 남자 수도원과 19개의 여자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는 이 연합회의 기원이 바로 톨로메이 성인입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수도원을 창설했을 만큼 성실한 수도의 길을 걸었던 성인이지만, 그분의 마지막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용하고 고독한 수도자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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